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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살 때 하고 싶어서 지금 생각해보면 열심히 독학으로 공부 했었던 게임기획,,


만으로 19 살때 게임기획전문가 자격 취득

자격 증 취득후 당연히 게임관련 업을 할 수 있을 것 이라는 환상을 가지고 열심히 역기획도 해보고,

개인적으로 만들고 싶었던 게임 기획안도 작성해 보고 했지만,


군대감.. 상병 까지 일반 부대에서 작업만 죽어라 하다가,

그래도 짬좀 차면 다시 글 적을 수 있는 시간이 있지 않을까?

게임 기획서를 만들어 볼 시간이 있지 않을까?

행복 회로 돌리면서 버텼었다.


그런데. 상병 진급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GOP 로 입성,


전역 전 까지 10개월 정도 생활 루틴은

짧은 취침 후 에 작업 조금 하고 또 바로 근무 나가고 를 반복.


그래도 내가 의지가 있었다면 다른거 할 수 있는 시간 낼 수 있지 않았냐구?


[하루 취침 할 수 있는 시간은 8시간 근무+작업 후 4시간 취침. 후 또 일어나서 8시간 동안 근무 +작업 후 또 4시간 취침 루틴.

근데 8시간 근무 후 4시간 취침 인데. 작업 까지 하면 시간이 맞지 않는데? 하시는 분들이 있으시곘죠?

취침 시간을 쪼개서 .. 작업을 하는 거였음..]


한번 해보세요, 물리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실탄들고 수류탄 들고 거기다가 관심 신병 실탄 수류탄 까지 다 들고,

한타임 근무 때마다 25 km (+ - 5Km) 정도 되는 거리를. 걸었음.

[단순 시간 환산] 20km 라고 해도 쉬지 않고 걷기만 해도 6시간 이상 걸림.


왜 그렇게 천천히 걷냐구?

가파른 오르막과 내리막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평지는 짧았으며,

평지라도 철책 확인하면서 걸어야하니까 빨리 걷고 싶어도 못걷는다.


그런 곳에서 저 속도로 걷는다? 갓 입대한 신병들은 따라 오는 것도 힘들어 할정도다.

10에 3명정도는 힘들어 하지만 어떻게든 따라 오고.

3명 정도는 속도를 조금 늦춰주면 따라오고

4명 정도는 쳐진다. 그래서.. 탄, 수류탄을. 사수가 들어줘야 간신히 따라 오는 속도다.


주말? 그런거 없음. 주말이라고 군인이 쉬면, 그에 따른 공백을 매우질 못함.

그렇게 전역 하는 날까지 근무를 섰고

부대원들중 반이상이 근무 나가거나 취침 할 때 전역했음.


덕분에 전역 하니 뇌가 굳어 있어서, 상상하는 방법을 잊어 버림.


전역 후 먹고 살아야 할꺼 아니야? 그래서 뭘로 먹고 살아야 할 지 고민 하다가,

고3 졸업후 정말, 잠깐 입학 했다가 자퇴 했었던 대학에서의 전공인 네트워크,IT 관련 공부를 하는 것이 살길이다라는 생각을 했지만.

다시 대학 입학은 못할 짓이라 수능 안봐도 되는 인력개발원에서 2년간 유비쿼터스 라고 하는 학과를 배움.

실제 공부 할 때 배웠던 것은 네트워크.


네트워크관리사 2급, 유비쿼터스 전문가 자격 취득,


인력개발원 수료 후!

아~ 그래도 이제 굶지는 않겠구나!! 희망에 차 있었는데.

갑자기 이명박 대통령 당선,

땅 파기 시작, 지원금으로 버티던 중소 네트워크 회사들 굉장히 많은 수가 폐업이나. 사업 축소,


신규 인력 채용 제로에 수렴.물론, 당시에 잘 버텨서 아직도 업으로 삼고 있는 동기 들도 있는 것 같긴 하지만,

난 망함. 인생..ㅋㅋㅋ


그 이후로 마트에서 1년 넘게 과일 발주, 재고, 판매 일하다가 어자피 정규직도 가망성 없어서,


멸치 납품 하던 아저씨 따라서 (물론. 근로 계약은 안썻지만)

그냥 믿음으로 반년 가까이 따라 다니면서 일 봐줌.

그런데, 그게 내 무덤 파는 일 이었음.


그렇게 빛만 지고 1년 정도 혼자 앓다가,.


삶이 너무 더럽고 힘들어서 자살하려고 차안에서 연탄불 피웠으나 살아 남.

6개월 정도 대학 병원에 입원(추측 기억은 안남)

퇴원후에도 적어도 1년간은 내가 누군지 기억 못했음.


벌써 10년 도 넘게 지난 일인데.

당시에 있었던 일들이 단편 적으로 이제서야 조금씩 기억 난다.


아침에 일어나서, 씻고, 멍하니 앉아 있다가

어머니가 밥먹으라고 하면 식탁에 앉아서 밥먹고,

다 먹으면 거실 소파에 앉아서 또 멍.. 하는게 일상 이었음.


유일한 외출은 어머니가 병원 가자고 할 때, 운전 하고 대학병원 다녀 오는 것 이었음.


근데 웃긴건, 내가 누군지 부모, 형제도 못 알아 보는 놈이 운전은 하는 방법은 기억 하고 있었 다는 것.

근데 더 웃긴건 당시 타고 다니던 내 차를 기억 못함.ㅎㅎㅎ

예전에 탔었던 차만 기억함.


그렇게 꽤 오랫동안 내가 누군지 기억도 못하는 암흑기 였었음.

그렇게 집 병원을 반복 하다가,

내가 누군지, 내 물건이 어떤건지, 부모 형제가 누군지 다시 기억 하기 시작 하고 부터

집이 잘 사는 것도 아니고 살림에 보템이 되야겠지?

일 하려고 발악 함.


그런데 그게 될까?

과거의 기억이 조금씩 회복 된다고 해도,

그건 그냥 과거에 기록 되어 있는 정보를 뽑아 쓰는 것 뿐 이었음.


기억력은. 적어도 입력 되는 면 에서는

상당히 진행된 알츠하이머 보다 훨씬 더 심각한 상태 였던 것.

과거에 있었던 데이터 들은. 조금씩 복구가 되서 기억이 나는 부분도 있었지만.

새롭게 입력 되는 데이터 들은. 저장 되지 않았음.


당시에 내 뇌는 휘발성 데이터 처리 장치인 memory 와 같았음.

HDD. SSD 같은. 영구 저장 장치에 저장 되지 않았음.


아니 .. 저장이 되긴 됐었 던것 같긴 하지만,

정보가 어디 있는지 찾아서 출력 할 수 있는 색인(index)이 없었음


그 전에 자살 시도 전이 인생에 가장 어두운 암흑기 인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


살아 났고, 살려면 해야 하는 꼭 필요한 행위를 할 수 없다는 그..압박감.

그게 너무 끔찍 했고, 괴로웠음.


난 우리 가족에게 정말 사람이라면 가족이라면 하지 말아야 했던..못할 짓을 했던 것 이었고

그에 따른 죄책감을 갖고 있고, 그것을 조금이라도 갚을 수 있는 방법은

사는데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질 적인 면에서 보템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 했기 때문.


그래도 어떻게든 일 해보겠다고, 처음에 했던 일은 비파괴검사원 이었었다.

한달간 광주에 있는 학원에서 교육을 받고 입사를 했지만,

그게 될까? 장기 기억 장치가 오작동을 하는데?


일반 사원은 시키는 일만 하면 됬었지만. 그래도 장기 기억이 필요한 부분도 많았기 때문에,

있던 현장에서 당연히 싫어 했었을 테고, 그래서 서산, 포항등으로 2~3달씩 출장을 다녔음.

말이 출장이지 유배였겠지 뭐..ㅎㅎ


출장이 끝나면 다시 출퇴근 할 수 있는 거리에 있는 현장으로 갔어야 했는데.

현장에서 같이 일하던 대리와 주임 이 제가 있는 걸 싫어 하는 것을 느낌.

사실 나 같아도 그렇게 일 하는 사람이 있으면 싫어 했을 것 같아서 원망은 안함.


그래도 어떻게든 1년 넘게 버텼음.

내가 그렇게 살아 왔기 때문에 생긴 잘못 이라 원망도 없이 그냥 담담히 사표 내고 퇴사.


아.. 그 회사에서 퇴사 전에 집에 또 한번 큰 일이 있었음.

아버지가 돌아 가셨음.

(아버지가 돌아 가신 것도, 참.. 당황 스럽긴 했지만.. 그 상황은. 이건 나만.. 기억 하겠음.)


덕분에 내가 이상해서 일을 못하는 줄을 알면서도 1년 넘게 버텼던 것.

일도 못하는 놈이 안나가고 버티는데 현장에서 내가 얼마나 미웠을까? ㅎㅎㅎ


그렇게 자진 퇴사를 했고, 덕분에 실업 급여도 받지 못했었음.

지금 생각 하면 그냥 권고 사직으로 해주지..

그랬으면 실업 급여라도 두어달 받을 수 있었는데. 그런 생각은 조금 듬.


그렇게 퇴사 후에,

살려면 실물로 바꿀 수 있는 재화기 필요 하잖아?

그리고 또 희망이 있다고 느꼈던 것 은.

그 이후로 기억력이. 아주 조금씩 이지만 회복 되고 있긴 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음.


그래서 정말 지금 생각 하면 내가 미쳤었는데.

상용차 기술 교육원에서 4.5개월 인가? 교육을 받고 정비소에서 일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었음.

(왜냐면.. 내 입으로 말하기 부끄럽지만, 손재주는 있는 편임.)


못되도 자동자 정비 기능사 자격증이 남고,

잘되면 정비 기술을 배워서 사용 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 생각 하면 멍청하게 행복 회로를 돌렸던 것.


어쨌든 내 기억력에 문제가 있는 것을 들키기 않기 위해 진짜 다른 사람들은 몰랐겠지만,

잠자다가 중간에 일어나서 3~4시간씩 그날 배웠던 기술을 복기 했음.

그럼 전부는 아니어도 10~20% 정도는 기억 할 수 있었기 때문

물론 그렇게 배워서 정비 자격증을 취득 하긴 했다.

하지만 실제로 그 일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지 않아서 결국 못하긴 했지만.


그래도 당시에 내가 가장 잘 선택 했었던 일이 있는데

정비 기능사 자격증을 취득 하면서,

기술 교육원에서 지게차 면허도 취득 할 수 있게 연습 할 수 있는 교장과 지게차가 있었는데

몇번 연습 해보고 한번에 지게차 면허를 취득 한 것.


사실 지게차 면허가 있다고 해도, 기억력에 문제가 있어서, 일을 하진 못했다. ㅎㅎ


예전에는 안그랬는데 자살 시도 후 기억력에 문제가 생긴 후,

회사에 입사해도 하루 이틀 만에 짤리거나,

짤리기 전에 내가 못버티고 못다녔다.


그래도 하루하고 짤리고, 빠를때는 입사 하고 4시간도 안되서 짤리고를 반복 하면서 지게차 스킬이 늘긴 늘었다.

그건.. 그래도 정말 다행 인것 같다.

(위치를 기억 해야 하기 때문에 기억력이 필요 하긴 하지만 잠깐정도는 기억 할 수 있는 시간은 조금씩 늘었기 때문.)


비파괴검사 이후로 1년 이상 해본 일이 없어서 미래가 걱정이 되긴 한다.


20년 12월 이면 지게차면허 취득 한지 벌써 만 4년이 되는 날이다.

나의 기억력.. 저장장치가 어디까지 회복 될 지는 모르겠지만.


CPU는 .. 너무나 멀정하고,

MEMORY 도 멀정 한 것 같고,

메인보드와 오른쪽 이미지처리장치가 조금 좋지 않긴 하지만 심한 것도 아니고.


요즘 약 잘 나와있잖아? ㅎㅎ

덕분에 정상 상태를 유지 중이다.


다만.. 저장 장치(HDD,SSD)가 문제 일 뿐이다.

하지만 조금씩 고쳐 지고 있는 것 같긴 하다.


예전 정상 상태 일때 대비 하면 1/4 정도 밖에 안되는 것 같긴 하지만,

회복 속도가 복리로 좋아 지는 것 같긴 하다.


사실 당시에 비하면 확실히 좋아 진 것 같고, 회복 속도도 점점 빨라 지고 있는 것 같아도,

이전 나에 비해서 어디 까지 좋아 질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긴 한다.


정신건강의학과에 가서. 검사를 해봐도 의사가 하는 말은 "집중!!" 하라고만 하는데.

그게 되면, 내가 이렇겠어?. ㅂㄷ


그래도 자살 시도 실패 후.. 만 4년이 다되어 가는 현재. 다시 죽으라고 하면 못 할 것 같다.

살아 있다는 것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고,

내가 죽으면 남아 있는 가족들이 느낄 상실감, 슬픔 등등..너무 큰. 잘못을 하는 거다.

그리고 그 것을 깨달은 상태에서 다시 시도 할 만큼, 난 그렇게 모질지 못하다.


자살을 생각 하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겠지만, 또 그렇게 적지도 않겠지?

자신의 삶을 자신의 손으로 끊으려고 생각 하는 사람들은. 다시 한번.. 천천히 생각해 보길 바란다.


한번 죽으려고 시도 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이.

살아난 후에 겪는 후유증은 생각보다 훨씬 고통 스럽다.


후유증을 겪을 때 다시 죽으면 되는거 아니야? 라고 하는 사람들이 몇 있을 거라 생각 한다.

그런데, 살아 나면? 다시 죽고 싶은 생각은 사실 다시 들지 않는다.


남아 있는 가족들이 겪고 있는 슬픔을 보거나,

소중한 가족이 없더라도 다시한번 자신을 되돌아 보게 되서,

분명히, 다시 일어 나고 싶은 생각이 들 것 이라 생각 한다.


물론, 우을증이 심각하게 와 있거나, 다시 살아 나니, 장기 밀매 라도 당하면 또 모르겠다.

나도 우울증이 있었던 것 같긴 한데, 살아 나고 나니 우울증? 그게 무언지 기억도 할 수 없는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다시 죽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글은 이렇게 적었지만.. 웃긴건, 나도 사실, 얼마 전까지 삶의 의욕이 없었다.

재미 있는 것도 없었고, 하고 싶은 것도 없었고,


그냥 막연하게, 내 아픔을 대가 없이 나눠가진 가족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 뿐 이었다.


벌써 4년 가까이 지난 일이 되어서 하는 말 일 수도 있지만,

죽으려는 용기가 있다면, 차라리 그 용기로 살아라.

하루하루 버티는 것도 의미 없이 느껴 질 수도 있다. 하지만 버텨라.


경험에 의하면,

버티다보면 의미기 생긴다.

버티다보면 목적이 생긴다.

그러다 보면 하고 싶은 일도 생길거다.


물론. 하고 싶다고 그걸 업으로 할 수 있다는 건 아니다. ㅎㅎㅎ

다만, 꿈이라도 꿔 볼수 있지 않을까?


꿈을 현실로 이루진 못해도 꿈을 꾸고 있는 것과, 꾸지 않는 것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다.

0과 1의 차이다. 0과 100의 차이다.


지금의 난. 꿈을 꾸는 것의 재미를 알기 위해 살고 있다.

자살을 생각 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다시 한번.. 삶을 천천히 되돌아 보길 바란다.

좋았었던 일, 힘들었던 일, 소중한 사람, 미웠던 사람, 사랑하는 사람.등등..

내가 죽으면 남겨진 사람들이 겪을 슬픔 등..


내가 죽었다고 슬퍼할 사람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은.

내가 죽으면 그것을 가십으로 삼고 웃고 떠들 놈들을 생각 해봐라.


어으.. 그냥 갑자기 내 상태가 어떤지 갑작스럽게 적기 시작해서,

중간 중간 빠진 상황도 있긴 하지만, 큰 틀에서 보면 저것과 같다.


자살을 생각 하는 사람들 에게, 자살을 해도 된다는 뜻으로 적은 글은 아니다.

자살을 하려는 사람들의 마음은, 직접 경험해본 내가 더 잘 알지 않을까? 하는 어설픈 자신감을 가지고 쓴 위로로 아니다.


그냥. 내 경험을 기록 하고 싶었고, 자살을 생각 하고 있는 사람들중 한명이라도,

자살하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살았으면 힘들어도 버텼으면 하는 생각 을 가지고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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